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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소망이 담긴 곳

천상시아 2008. 6. 10. 15:06

부처님 나라를 만들려던 신라인의 소망이 담긴 곳- 경주 남산


현장 마당 / 역사 흔적 바로 보기


◎ 신라 사람들이 경주 남산에 수많은 불상을 만든 이유를 알아보자.

신라불교의 중심지였던 남산


신라 천년의 도읍이었던 경주는 가는 곳마다 볼 만한 문화유산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찾는 우리나라 제일의 역사 여행지죠. 그러니 대부분 한두 번쯤은 경주를 찾았고, 불국사와 그 안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는 불교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주로 교양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서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절과 불상을 만들어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불교문화를 꽃피우려 노력했지요. 경주 남산동 일대에 자리한 남산은 바로 신라 불교문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답사 전에 잠깐!〉경주 남산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주는 동으로는 명활산과 낭산, 서로는 선도산과 벽도산, 남으로는 남산, 북으로는 소금강산과 금학산이 있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형태입니다. 동서남북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기 때문에, 경주는 요새로서 훌륭한 곳입니다. 경주 남산에는 110여 곳이나 되는 절터, 80여 개의 마애불(바위 위에 새긴 불상)과 불상, 60여 기나 되는 크고 작은 탑 등이 있습니다. 남산의 답사 방법은 쉽게 다닐 수 있는 동남산 코스와 등산과 함께 유물, 유적을 답사할 수 있는 종주 코스가 대표적입니다. 동남산 코스는 보리사와 탑골 마애 조상군, 부처골 감실 여래 좌상 등을 돌아보는 코스입니다. 종주 코스는 나정에서 시작하여 포석정, 배리 삼존 석불, 삼릉을 거쳐 삼릉 계곡에 있는 많은 불상을 보고 용장사지를 지나 신선암 마애불과 칠불암 마애불, 마지막으로 서출지에 이르는 상당히 먼 거리의 힘든 코스입니다.

 


<차근차근! 문화유산 살피기〉
동남산의 문화재


남산에서도 동쪽 부분을 일컫는 동남산은 경주 박물관 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울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동남산의 대표 문화재로는 보리사 석조 여래 좌상과 탑골 마애 조상군, 부처골 감실 여래 좌상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나온 80여 구의 불상 가운데 완전한 형태의 불상은 단 두 개뿐입니다. 하나는 보리사 석조 여래 좌상으로 남산에 있고, 다른 하나는 약사여래 불상으로 지금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요. 보리사 석조 여래 좌상의 손 모양을 보면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보리사 석조 여래 좌상의 비례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 얼굴이 조금 큰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불상은 숭배의 대상이므로, 그 아래에서 절을 하듯 위를 올려다보면 얼굴의 비례가 딱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리사 석조 여래 좌상에 이런 비례 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정말 재미있지요.

 


보리사에서 서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탑골이 나옵니다. 이곳이 탑골이라 불리는 이유는 골짜기에서 400m 정도 들어가면 3층 석탑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 탑 바로 옆에는 높이 10m에 둘레가 30m가 넘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바위의 네 면에는 부처, 보살 등 불교와 관련된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처 바위’라고 하지요. 공식적으로는 ‘탑골 마애 조상군’이라고 부릅니다.
탑골 마애 조상군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북쪽 바위 면에 새겨진 탑입니다. 북쪽 바위 면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를, 그 바로 옆으로 두 기의 탑 모양을 새겼습니다. 앞에서 바라보기에 왼쪽(동탑)은 9층 탑이고, 오른쪽(서탑)은 7층 탑입니다. 이처럼 탑을 바위 위에 새긴 이유는 그 당시 신라인들이 탑 자체를 예배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9층 탑은 황룡사 9층 목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황룡사 9층 목탑은 몽골의 침입 때 불에 타서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탑골을 나와 역시 10분 정도 걸어가면 부처골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감실 여래 좌상이 있습니다. 바위를 깊이 파서 그 안에 불상을 놓은 것을 감실 부처라고 합니다. 감실 여래 좌상은 명상에 잠긴 듯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불상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신라 백성의 모습으로, 보는 사람에게 친숙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신라의 긴 역사를 지켜본 서남산


서남산은 경주 시내에서 울산광역시 울주군으로 향하는 도로 왼쪽에 있는 남산을 말합니다. 이곳에는 신라의 시조(한 집안이나 왕조의 맨 처음 조상)인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의 배경이 되는 나정을 비롯하여 신라의 첫 궁궐터라는 창림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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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박혁거세 탄생 설화와 창림사지의 관계는?

고조선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우리나라 남동쪽에 진한을 세웠는데, 이들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고허촌의 소벌도리가 흰말 한 마리가 우물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가까이 가 보니 그 자리에 붉은 알 하나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알에서 잘생긴 사내아이가 나왔기에 아기 이름을 ‘혁거세’, 다른 말로 ‘밝은 이’라 하였습니다. 여섯 마을의 촌장은 회의를 열어 이 아이를 임금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정 남쪽에 궁궐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창림사지입니다.<-----


창림사지를 지나면 배리 삼존 석불이 나옵니다. 배리(拜里)라는 이름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신라 시대 유렴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제삿날에 스님이 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유렴은 스님의 차림새가 너무 더럽고 초라해서 거칠게 내쫓았죠. 그러자 스님은 소매에서 사자를 꺼내어 타고 남산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유렴은 이 모습에 놀라 밤새도록 절을 하며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 뒤에 동네 사람들은 유렴의 비열한 행동을 비꼬아 ‘배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 동네를 ‘배동’이라고 부르지요.

 


남산 종주 코스

서남산 배리 삼존 석불 바로 위에는 삼릉 계곡이 있습니다. 이 삼릉 계곡으로 올라가 용장사를 거쳐서 신선암과 칠불암으로 거쳐 내려오는 것이 남산 종주 코스입니다.
먼저 삼릉 계곡을 따라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납니다. 삼릉이란 이름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3개의 왕릉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삼릉 계곡은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죠. 삼릉에서 10분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이 ‘목 없는 불상’입니다. 언제, 무엇 때문에 목이 잘렸는지, 그 시기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없어도 앉은 자세와 옷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신라 시대에 스님들이 이런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목 없는 불상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바위 위에 돋을새김(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을 한 관음보살상이 있습니다. 이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입술에 마치 립스틱을 칠한 것처럼 붉은빛이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붉은빛은 일부러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바위의 붉은빛을 그대로 이용한 것입니다.


 


다시 목 없는 불상으로 내려와서 개울을 건너 10분 정도 가면, 선각 육존불이 마치 바위 위에 낙서한 것과 같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선각 육존불은 바위에 여섯 부처를 선각(선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으로 새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또 바위 위로 올라가면 선각 육존불로 빗물이 직접 흘러내리지 못하게 길게 파 놓은 홈이 있습니다. 또 이 선각 육존불을 보호하기 위해서 앞쪽에 전각을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는 불상을 생각하는 신라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선각 육존불을 지나 10여 분 걸으면 앞을 가로막는 큰 바위가 나타납니다. 그곳에도 선각으로 새긴 불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선각 여래 좌상은 세련되지 못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모양입니다. 그나마도 다리 부분은 마무리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다가 만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삼릉 계곡에는 멋진 작품의 불상도 있지만 애초는 그렇지 않았는데 성형을 잘못해서 원래의 모습을 망쳐버린 불상도 있답니다. 바로 보물 제666호인 삼릉골 석불좌상이지요. 불상 뒤에있었던 광배(불상 뒤에서 빛을 발하는 불꽃 모양으로 만든 구조물)는 모두 깨져버려 불상 뒤에 조각으로 남아 있고 얼굴을 보면 보수한다고 시멘트로 성형 수술을 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차라리 얼굴을 가린 채 목 아래로만 보면 너무나도 멋진 모습인데 잘 보여주자고 했던 성형 수술이 엉뚱한 결과를 낳은 현장을 이곳에서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 뒤 15~20분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면, 상선암에 이릅니다. 이쯤되면 등줄기에서도 땀이 흐르기 시작하지요. 상선암의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세요. 그러고 나면 바로 삼릉 계곡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애 석가여래 좌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높이 5.2m에 이르는 이 불상은 머리는 돋을새김을 하였지만, 그 아랫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하여 단순화했습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산을 오르면 바둑 바위가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 두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이곳에서는 신라 천년의 역사가 시작되고 마감된 경주가 손에 잡힐 듯 환하게 보입니다.

 


또 바둑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상사바위가 있는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낫게 하는 효험이 있는 바위로 알려져 있지요. 그 바위 뒤로 돌아가면 정말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불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주객이 전도됐다고 해야 하나요. 조그만 불상이지만 불상을 한 귀퉁이로 밀려 나 있고 불상을 위해 붉을 밝히는 촛대가 불상이 있는 자리에 버티고 있는 모습이라니... 상사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가길 10여분 금오봉 정상에 오릅니다. 이곳까지가 저 아래 삼릉에서부터 시작된 남산 등정길의 시작된 남산 종주 코스의 절반이지요.

 


남산 삼릉 계곡에 있는 대부분의 조각들은 바위에 직접 부처를 새긴 마애불들입니다. 이것은 신라인들이 영산(신령스러운 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남산을 산악숭배(높이 솟은 산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하는 일)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그 당시 신라인들 사이에는 산악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산의 돌에 부처를 새겨 넣음으로써 신앙심을 키우려고 했던 것이죠. 또 부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 큰 힘이 되려고 했습니다.

 


남산의 중심인 용장사지에서 칠불암까지


용장사지는 용장골의 정상에 있는 절터로, 이곳에는 3층 석탑과 삼륜 대좌불이 있습니다. 용장사지 3층 석탑은 아래서 바라보면 마치 함부로 우러러볼 수 없는 부처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용장사 3층 석탑은 남산 전체를 탑의 기단(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바닥이 되는 부분)으로 삼아 만든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단 형태가 아닌 남산 전체가 떠받드는 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작품인 셈이지요.

 



석탑 바로 아래 삼륜 대좌불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려면 밧줄을 잡고 가야만 합니다. 내려가는 거리는 짧지만 많은 번거로움이 있지요. 삼륜 대좌불 입구에는 멋진 모습의 마애 여래 좌상이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을 반깁니다. 그 앞에는 삼단의 둥그런 대좌 위에 목이 없이 앉아 있는 삼륜 대좌불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높은 남산 용장골에서도 더 높은 대좌를 만들어 그 위에 부처를 모셨으니, 삼륜 대좌불은 세상 저 멀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볼 수 있을 겁니다.

 


용장골에서 신선암까지는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합니다. 호수가 나오고 거기서 산등성이를 하나 더 올라 앞을 보면 벼랑 한쪽 위 경사면에 돋을새김의 마애 보살 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멋진 경치와 함께 어우러진 마애불 앞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입니다. 신선이 사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요?

 


신선암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칠불암에 닿습니다. 칠불암은 말 그대로 바위에 일곱 부처를 새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뒷면 바위에는 삼존불을 그 앞에는 네 방향에 부처를 새겨 총 일곱 불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곳까지 오면 이제 산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산을 다 내려와 서출지에 이르면 그 길던 남산 종주 코스는 끝을 맺게 됩니다. 서출지에서는 7, 8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연꽃과 배롱나무꽃을 볼 수 있습니다.

 


〈답사 갈무리!〉

신라인들은 남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기며, 신라를 부처의 나라인 불국토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신라인들은 왜 불국토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신라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백성을 가르치는 데 불교가 중심이었습니다. 신라인은 그들이 바라던 통일을 이루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데, 불국토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겠지요. 그래서 신라인들은 화강암 덩어리인 남산에 그들의 서원(불교에서 소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맹세하는 일)을 이루려고 수많은 절과 불상, 탑을 세운 것이 아니었을까요?

 

◇ 추천 답사 코스

추천 답사 코스(남산 종주 코스)


나정 → 창림사지 → 포석정 → 배리 삼존 석불 → 삼릉 → 목 없는 불상 → 선각 육존불 → 선각 여래 좌상 → 상선암 → 마애 석가여래 좌상 → 바둑 바위 → 금오산 정상 → 용장사지 → 신선암 → 칠불암 → 서출지


 

2007 중학 독서평설 5월호

 

 

글/사진 우일신 정표채(다음 나의문화유산답사 대표)

본 내용은 지학사 중학 독서 평설 5월호 기고 내용입니다.(판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  http://cafe.daum.net/7116